고마워, 코비드야
한때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막연히 동경했다. 내 머릿속 해커는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치앙마이에 갔다. 서핑을 하다가 코딩하고, 커피를 내려 마시다가 코딩하고, 술을 마시다가 기타를 쳤다. 나는 서핑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그런 장면은 꽤 구체적으로 상상했다.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면 일과 삶도 자연스럽게 섞일 줄 알았다.
그러다 코비드가 왔다. 재택은 선택이 아니었다.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여덟 달이 흐르는 동안 이직을 두 번 했고, 이별도 한 번 겪었다. 하지만 내가 일한 곳은 치앙마이가 아니라 대부분 방구석이었다.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개발하는 건 생각보다 불편했고, 애초에 나는 소란한 환경을 좋아하지도 않았다. 상상 속에서는 일과 삶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게 자유처럼 보였다. 막상 겪어 보니 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것에 가까웠다.
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집은 꽤 다른 공간이 됐다. 쉬기에는 충분했던 집이 일하기에는 너무 좁았다. 미뤄둔 청소도 더는 미룰 수 없었다. 처음에는 이런 생활이 내가 바라던 자유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, 일도 휴식도 제대로 끝나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. 거실과 주방이 넓었으면 좋겠고, 일하는 곳과 쉬는 곳이 분리됐으면 좋겠고, 주변이 덜 번잡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 바라는 것이 늘었고 이사를 결심했다.
그렇게 3년쯤 지나자 재택의 장단점이 더 선명해졌다. 내 생활에 집중하기에는 좋았고, 출퇴근에 체력을 쓰지 않아도 됐다. 반면 일의 재미는 줄었다. 오피스에는 동료와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있었다. 혼자 방 안에서 일하기보다는 조용하고 넓은 개인 공간에 출근하는 편이 내게 잘 맞았다. 매일 출근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일주일에 이틀이나 사흘 정도라면 좋겠다.
실은 내가 원한 것은 출근하지 않는 삶이 아니었다. 언제 어디서 누구와 일할지 조금 더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삶이었다. 치앙마이에서 서핑하거나 카페에서 코딩하는 장면은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. 어디서 일하고 쉴지, 언제 사람과 함께하고 혼자 있을지를 내가 고를 수 있으면 좋겠다. 그때는 그런 삶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노마드처럼 보였을 뿐이다.
물론 그런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 노마드가 되어야 한다면, 나는 여전히 노마드가 되고 싶을 거다. 하지만 오랜 재택을 지나고 보니 꼭 노마드가 되어야만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.
내가 원했던 건 노마드라는 이름이 아니라 일하는 장소와 시간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삶이었다. 코비드가 아니었다면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데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.